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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저런 시선 ▣

상평통보(常平通寶)

아이들 외갓집의 외할아버지 고서적함에서 나온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주화인 상평통보.

대략 200여개가 꾸러미로 있었는데 그중에 일부를 가져온 거다.

모양이 얇게 나뭇잎처럼 생겼다고 엽전(葉錢), 주성분이 구리와 주석으로 되어있다고

동전(銅錢)이라고 부르는 유래가 이 상평통보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외할아버지 집에서 갖고온거는 모두 당일전(當一錢)짜리이며 세어보니 18전으로 조선시대에 국밥한그릇이

30전이 필요했다니 현재의 화폐적 가치나 문화재적 가치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상평통보라는 글씨 모양이 다 다르게 주조된거는 주전소마다 다른 글씨 모양을 사용해서 그런거고

상평통보는 그 종류만도 무려 3천여종 가까이 될 만큼 조선시대 인플레의 주범이었다고 하며, 요즘의

경제논리가 적용되지 않았던 시대라 거의 무한정으로 마구 찍어내는 화폐였다고 한다.




동전뒷면의 글씨중 구멍위쪽의 글자는 상평통보의 주전소를 나타내는 표시이며 나머지 글씨들은 일정한

형식이 없이 만든시대나 화폐의 가치를 나타낸다고 하는데 숫자가 반드시 화폐단위는 아니라고 한다.





엽전을 꿰기 위해서 뚫어놓은 구멍의 크기나 엽전 앞면의 도형이 조금씩 다르다거나 동전의 빛깔이

조금씩 다른건 보관의 차이도 있지만 구리와 주석의 합금방법이 주전소마다 달랐다고 한다.

즉, 국가에서 발행하는 화폐이지만 체계적인 관리나 표준이 없었다는 것이다.





옆에서보면 두께도 제각각이다. 19세기초에 상평통보 600전으로 80kg쌀 한가마니나 닭20마리,

혹은 청어 200마리를 살수있었다고 한다. 당시 왕릉을 지키는 종9품 능참봉의 월급이 쌀10말과

황두5말이라고 하니 상평통보 600전은 능참봉 월급의 절반을 훨씬넘는 액수였던 셈이다.





혹시나 저 엽전중에 당오전(當五錢)이나 당백전(當百錢)이 있나 봐도 모두 당일전이네...

20전이 한냥이라고 하니 한냥이 채 안되는 갯수다. 또 당오전의 화폐가치는 당일전의 다섯배이나

시장에서의 실제적 가치는 두배로 유통되었으며 나중엔 그것도 안되니 당백전이 나왔다고 한다.



 

상평통보는 1678(숙종4)년에 조선시대 법화(法貨)로서 채택,유통된 명목화폐로써 조선시대의 유일한

법화로서 조선말기까지 사용된 전근대적 화폐이다.이게 우리집에서 다시 빛을 본다.


 

이 옛날돈의 현재적가치 이전에 외할아버지께서 아이들에게 주신거고 우리조상들이 사용했던

화폐인데 그래도 잘 보관해야지. 이번 기회에 상평통보에 대해서 좋은 공부를 했으니 화폐이상의 가치를 얻은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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